경마장 가는 길 part 1

2009/10/22 17:53 Tags » , ,
경마장 가는 길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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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여름은 유난히 나를 괴롭히고 지치게 했다. 찌는 더위가 아니라 촌음을 다투는 러시아워 시간대에 지하철에서의 불쾌한 짜증처럼 여기저기서 나를 짓눌렀다. 그러다 보니 잡초처럼 스트레스만 무럭무럭 자라났고, 누군가 나를 베지 않으면 자칫 흉폭해질 위험이 커졌다. 그래서 스스로 이 사태를 진단하고 치료법을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이 '뛰자, 앞만 보며 뛰자!'이다. 낮게 땅거미가 깔린 밤에 한강을 따라 뜀박질을 구상하다가 이내 포기한다. 무엇보다 저질 체력으로 전에 한번 시도하다가 실패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뛰지 못하면 대신 뛰어 줄 누군가를 찾아 이곳까지 흘러 오게 된다.
사실, 과천경마장은 그리 달갑지 않은 추억거리가 있었다. 이곳은 나에게 '이별'이란 정상으로 향하는 잠시 행복한 산행과 같은 곳이다. 그렇지만 한번의 지독한 추억거리가 지금의 일탈에 몸부림치는 자가 진단서를 막지는 못했다. 부산하게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선다.

'경마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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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햇살이 좋은 날이다. 벌써 가을 찬 공기가 옷깃 속으로 침범하고 푸른 하늘은 풍선마냥 부풀러 지면과 거리가 멀어지는 오후이다. 환영의 인사인지 안경 사이를 비집고 새어들어 오는 강렬한 햇살이 슬며시 장난을 건다. 잠시 얼굴을 찌푸릴 뿐 손으로 그 짓궂은 장난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자연이 함께하는 이 순간만큼 자연스러운 일은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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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표정이 역력한 말과 그를 안타깝게 쳐다보는 기수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먹고 살기 위해 달리는 말과 먹고 살기 위해 채찍질을 하는 기수의 삶은 공통적이지만 쓸쓸하기만 하다.

'나 또한 살기 위해 행동할 것이며, 또 누군가에게 강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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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들로 인쇄된 종이를 손에 움켜쥐고 환호와 절망의 탄성이 뒤섞이고 있다. 벽돌로 잘 닦여진 평지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나들이의 분위기를 한껏내는 가족들은 뭔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을 만들어 낸다. 마치 화려한 카바레에 저녁식사를 위해 테이블 하나를 차지한 가족들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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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 방송이 경기 시작을 알리자 가까이에서 말들이 달리는 것을 보기 위해 하나둘씩 팬스 앞에 모여들기 시작한다. 그 군중 사이에는 노란 머리의 외국인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말이 필요없는 게임에 말을 보기 위해 국적을 벗어나 응원하고 환호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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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와와와~" 천둥과 같은 굉음이 멀리서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그 소리는 말들이 결승점에 가까이 갈수록 커져간다. 일분 남짓한 그 소리는 앰프의 볼륨을 높였다가 순간 정전이 된 듯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뭐지? 이 허망한 느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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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photograph by kenny

달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달린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넘쳐나는 에너지를 낭비할 무언가를 찾기 위해,
우리는 달린다.

거북이는 달린다.
느리고 빠르고는 중요하지 않는 것 같아.
그가 가고자하는 곳이 어디인지가 중요하지.
2009/10/22 17:53 2009/10/2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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